그런데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든 쉽게 소멸될 수 없는 제도와 또한 마찬가지로 쉽게 소멸되지 않을 개인의 충돌이다. 이를테면 국가나 법 같은 통치 제도는이따금씩 무정부주의나 무위자연설 같은 주장에 강하게 도전을 받지만 없어지기를 기다리기는 어려운 제도이다. 개인의 자유 또한 어떠 가혹한 억압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욕구이다. 이 둘이 충돌 할경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어느 편도 완전한 우위를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에서 해방되거라.현일의 그 같은 눈부신 미수 허목과 하헌 윤후 같은 거두들을 잃은 남인들의 기대와 성원들이 있었다.그러나 현일의 학식과 행검을 높이 산 숙종의 신임도우악스러웠다. 임금이 신하를 대하면서 자신을 소자로 칭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그 두터운 예우를 짐작할만하다.성현의 귀한 말씀을 읽을 틈도 없고 새로운 걸 배워알 틈도 없다. 시문으로 가슴 속의 아름다운 정의를풀어 볼 수도 없고 붓끝으로 공교로운 재^36^예를 펼칠 길도 없다. 그러면서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이 허망한 몸과 마음의 소모라니.관향으로도 짐작가는 일이겠지만 원래 재령 이씨는근거지가 남쪽이 아니었다.이 아이는 빼어난 재주로 나를 기쁘게 하였으나 그만큼 어미의 가르침에서는 일찍 벗어났다. 대여섯살때 이미 오경요어를 읽었으며 아홉 살 때는 이미연구를 지을 정도라, 내 깊지 못한 학식으로는 잘못이끌까 두려워 일찍 가르침을 사랑채로 넘겼다. 열셋에 구인략을 읽고 또 주역을 읽은 소감으로 시를지어 시아버님 운악공께 바쳤다.제도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우선시켜야 하는가는 그 시대의 상황이나 유행하는 이념에따라 달라진다. 제도가 공동선 또는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지상 과제를 창안하여 그 시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괴롭지만, 개인은 그것을 위해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대로 개인이 비대해져 개인의 평안, 개인의 행복 위에 어떤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가 되면 제도는 비웃음속에 소멸될 수밖에 없다.특히 내가 한
명나라가 백만 대군을 보내 왜적에게 짓밣힌 이 땅을 구해 줌으로써 우리는 틀림없이 명나라의 은의를입었고, 은의를 베푼 이를 잊지 않음은 아름답다.이 글을 정녕 네가 썼단 말이냐?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에서 해방되거라.이에 정조대왕은 비단으로 포장을 대신했다고 한다.@[제2부 자미화(보라색 자, 장미 미, 꽃 화) 그늘 아래서그런데 그 모두를 마다하시고 나를 열아홉까지 미혼으로 잡아두신 까닭은 아마도 군자의 탈상을 기다리기 위함이셨던 듯하다.세상은 망해도 사람은 길러야 합니다. 사람이 없으면 아름다운 뜻이 무승 소용이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슬하의 여러 자질이 아무 배움도 없이 나이만먹어가니 장차 이 일을 어찌 해야 될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비록 그 뜻은 군자를 거스르는 것이었으나나는 예를 다했다. 여러 날을 고심해 군자의삶을 그지나치심과 치우치심에서 끌어낼 구실을 궁리하였고정성스러움과 공경함을 잃지 않고 그것을 드러냈다.성품이 엄중하신 군자였으나 예를 갖춘거스름에는역정을 내지 못하셨다. 그날은 무연히 들으시더니 다음날 내게 조용히 이르셨다.나는 애써 군자를 먼저 보낸 애통함과 추스름을 아울러 스스로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나는 그일을 먼저 삶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으로 시작했다. 억지로끌려가는 것은 끌려가는 이도 괴롭지만 보내면서 그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에게는 더 큰 괴로움이 된다. 나는 서둘러 죽음으로 다가감과 마찬가지로 남겨지는 이들에게 그 괴로움을 끼치는 것은 예가 아니다.어떤 자유로운 정신은 여기서 그 시절의 여성에게가해진 구조적 억압 혹은 정싱적 폭력에 치를 떨 수도 있다.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고 철저하였으면한인간에게서 그처럼 굴종적인 행태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를 동정해 마지않을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그런 시대에 살지 않게 된 것을 그지없이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군자께서는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나고 기절이 있으시어 사람들의 기대를 모을 만큼 일화도 많았다.혼인 전에 들은 얘기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셋있다.현일의 총명함은 둘째 휘일에